기계 셋을 나눠 씁니다. 노트북은 판단하는 일을 합니다. 설계하고 쓰고 검증하는, 틀리면 되돌리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집에 있는 데스크톱은 자료를 모으는 일을 가져갑니다. 판단이 없고 양만 많은 일입니다. 아이패드는 읽기만 합니다.
처음 이렇게 나눈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노트북 한 대로 판단할 일과 양만 많은 일을 다 돌리다 보니, 무거운 자료 수집이 도는 동안 정작 판단이 필요한 작업이 느려졌습니다. 그래서 양만 많은 일을 따로 떼어 데스크톱에 맡겼습니다.
한 발 더 나가 봤습니다
한동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초안을 만드는 일까지 데스크톱에 맡겨 봤습니다. 판단이 아니라 일단 만들어 두는 일이니 넘겨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자료를 모으는 김에 초안까지 뽑아 두면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다듬기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얼마 못 가 도로 합쳤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노트북으로 합쳤습니다. 나눠서 얻는 것보다 두 기계에 걸쳐 두는 불편이 더 컸습니다. 데스크톱에서 나온 초안을 노트북으로 옮겨 오고 그 자리에서 다시 맥락을 잡고 고칠 게 있으면 또 오가야 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이어서 하면 될 일을 굳이 두 곳으로 쪼개 놓은 셈이었습니다.
옮겨 올 때마다 매번 "이게 어디까지 된 초안이었지"부터 다시 파악해야 했습니다. 자료를 모으는 일은 그런 게 없습니다. 다 모아지면 그걸로 끝이니까요. 그런데 초안은 끝난 것도 아니고 완전히 남의 손을 탄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오히려 더 헷갈리는 자리가 됐습니다.
나누는 것도 비용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넘길 수 있느냐만 볼 게 아니라 나누는 비용도 같이 봐야 한다는 것을. 어떤 일은 기계를 나눌 만큼 판단과 멀리 떨어져 있고, 어떤 일은 겉보기엔 단순해도 판단과 너무 붙어 있어서 나누는 순간 오가는 비용이 더 커집니다. 초안 쓰는 일이 후자였습니다. 자료 모으기와 비슷해 보였지만 실은 판단하는 일 쪽에 훨씬 가까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이패드는 여전히 읽기만 하는 자리로 둡니다. 쓰는 곳과 읽는 곳을 나눠 두면 고치다 만 것을 완성본으로 착각하지 않습니다. 이건 나눠서 얻는 게 분명한 경우였습니다. 같은 "나눈다"는 결정이어도 어디를 나누느냐에 따라 결과가 반대로 갔습니다.
지금은 새로 일을 나눌 자리가 생기면 넘길 수 있는지부터 묻지 않습니다. 오가는 비용이 얼마나 될지부터 먼저 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