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 절반이 샐 뻔했습니다

2026-08-14

사이트에서 쓰는 메일 주소를 새 서비스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강의 문의가 들어오는 통로라 손대는 게 조심스러웠는데, 원래 쓰던 서비스는 몇 가지가 막혀서 더 간단한 다른 서비스로 갈아타는 중이었습니다.

한 번 걸렸다가 넘어간 참이었습니다

그날 AI는 이미 한 번 방향을 잘못 짚은 채였습니다. 무료로 될 줄 알았던 기능이 실제로는 유료였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사과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안을 다시 짜서 순서를 정리해 주었는데, 그 목록 끝에 짧게 한 줄을 덧붙였습니다. 예전 서비스는 나중에 정리해도 된다고, 급할 게 없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몇 분 뒤에 다시 물었습니다

새 서비스 설정을 진행하다가, 아까 지나쳤던 그 한 줄이 다시 걸렸습니다. 예전 서비스를 정말 그냥 둬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달랐습니다. 그냥 두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두 서비스가 동시에 메일을 받으려고 하면, 어느 쪽으로 갈지 정해지지 않은 채 메일이 나뉘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인하는 쪽으로는 잘 오고, 확인 안 하는 예전 사서함으로는 그대로 쌓이는 식입니다. 반은 보고 반은 못 보는 셈이니, 완전히 실패하는 것보다 더 늦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강의 문의 절반이 아무도 안 보는 사서함에 조용히 쌓일 뻔한 것입니다.

걸린 이유

그 한 줄이 왜 걸렸는지는 저도 바로는 몰랐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니 짚이는 게 두 가지 있었습니다.

전산실에서 일하던 시절 메일 수신과 전달 방식을 다뤄본 적이 있습니다. 받는 통로를 하나로 정리해 두지 않으면 어느 한쪽이 조용히 밀려난다는 것을, 그때 몸으로 익혔습니다. 도메인 이름도 서비스 이름도 다 바뀐 지금, 그 감각만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서 AI가 한 번 틀렸던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한 번 어긋난 걸 본 뒤라, 다음에 나온 확언도 그냥 넘기지 못했습니다.

급하지 않다는 말

AI가 급할 것 없다고 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무너지는 문제는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급하지 않다는 것과 그냥 둬도 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그 차이를 가르는 감각은 숫자로 나오지 않아서, 묻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입니다.

요즘은 AI가 버튼 하나로 다 해결해 준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번 일을 겪고 나니 거기에 한 가지를 보태고 싶어졌습니다. AI를 쓰면 쓸수록 확인하고 알아보는 몫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몫은 여전히, 어쩌면 더 사람 쪽에 남아 있었습니다.

도구로만 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틀리는 물건을 계속 쓴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파트너로 보면 다릅니다. 틀리면 짚고, 짚은 뒤에 다시 확인하는 그 오가는 일이 낯설지 않게 받아들여집니다. 되묻고 다시 확인하면서도 저는 딱히 답답하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이걸 도구가 아니라 파트너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