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쳐 줄 사람이 저 하나였습니다

2026-09-23

새로 들어온 음향 콘솔이 낯설었습니다.

제가 배운 것은 아날로그 콘솔이었습니다. 다만 배우던 그 무렵이 이미 디지털로 넘어가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디지털 콘솔은 아날로그를 옮겨놓은 것에 가까워서, 아날로그를 쓰던 사람이 앉아도 크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십수 년이 지났습니다. 앞에 놓인 것은 그때의 디지털 기기와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용어는 익숙한 것들 그대로였는데, 연결하는 방법이 전부 디지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배울 데가 없었습니다

세팅해준 사람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도움이 됐지만 그날 한 번뿐이었고,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른 채 남은 설명도 있었습니다.

그다음은 매뉴얼이었습니다. 기능 설명이야 다 있었지만 펴놓고 익히기는 어색했습니다. 제대로 된 강의를 찾아봐도 마땅한 것이 없었습니다.

급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콘솔의 기본 기능만으로도 평소 운영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마이크를 여러 개 함께 써야 하고 다른 장비까지 붙여야 하는 날이 오면 얘기가 달랐습니다. 그런 날이 왔을 때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처음 보는 기기를 익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정말 걸린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저만 배우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없을 때는 다른 사람이 이 콘솔을 다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물어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배울 데가 없다는 말은, 가르칠 곳도 없다는 말과 같았습니다. 이 콘솔을 아는 사람이 저뿐이라면, 다음에 이걸 배워야 하는 사람에게 설명해 줄 사람도 저뿐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콘솔을 익히는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저만 써도 괜찮았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이 이걸 배우게 된다면 그대로 건네줄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만들면서 확인했습니다

먼저 매뉴얼을 통째로 건네고 이 콘솔을 조사해달라고 했습니다. 매뉴얼에는 쓰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있었습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였는데, 그건 매뉴얼 밖에 있었습니다. 이 물건을 써온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와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모아야 했습니다.

받아본 것을 처음부터 상세히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만들면서 확인하면 된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정리해둔 값 중에 틀린 것이 나와서 하나씩 맞춰본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열어봅니다

처음에 만들려던 것은 끝났습니다. 저만 쓰는 물건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콘솔을 익힐 수 있는 정도까지는 왔습니다. 안에 AI를 붙여서 물어보면 답을 받을 수 있게도 해뒀습니다. 처음부터 넣으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만들다 보니 필요해졌습니다.

더 들어가야 하는 부분(DCA나 이펙트 같은 것)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다음 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쓸 자리가 있었습니다

만드는 일은 즐겁습니다. 머릿속에 있던 것이 눈앞에서 되어가는 걸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들어놓고 어디에도 쓰지 않으면 그건 그냥 버린 것이 됩니다.

이 콘솔은 제가 맡아야 하는 물건이었습니다. 만들기 전에 이미 쓸 자리가 있었던 셈입니다. 이 학습 앱을 만들면서 겪은 다른 일들, 값이 틀려 있던 것을 잡아낸 일이나 배포 버튼 앞에서 멈췄던 일도 다 이 자리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