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1강 원고를 다시 쓰고 있었습니다. AI가 새 원고를 완성하고, 검증까지 마쳤다고 했습니다. 여덟 개 섹션의 시간을 다 더하니 44분, 애초에 잡아둔 계획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사를 눈으로 훑다가
원고를 받아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대사 양에 비해 시간이 너무 많이 잡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검증을 마쳤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 안 됐는데도, 그 느낌을 그냥 넘기지 않고 되물었습니다.
재보니 숫자가 달랐습니다
AI가 이번에는 짐작이 아니라 실측으로 답했습니다. 각 섹션의 글자 수를 세어 낭독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순수하게 대사만 읽으면 13분, 시연을 기다리는 시간과 실습까지 합쳐도 현실적으로 33분 정도였습니다. 설정해 둔 시간은 44분이었으니 10분 넘게 벌어져 있었습니다.
원인도 스스로 짚었습니다. 애초 계획에 적혀 있던 44분이라는 숫자를 그대로 원고에 옮겼을 뿐, 실제로 그 시간에 맞게 대사가 채워졌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확언한 "검증 통과"는 섹션별 시간을 더한 합계가 계획과 같은지를 본 것이었지, 대사가 그 시간을 채우는지를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확언이 할루시네이션이었던 셈입니다.
나머지 강의는요
다른 강의들도 같은 방식으로 잡혀 있었는지 궁금해져서, 지금까지 시간을 다 체크한 게 맞는지 물었습니다. AI는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완전히는 아니라고, 아홉 개 강의 전부 낭독 시간은 쟀지만 섹션별로 설정과 맞는지 끝까지 대조한 것은 1강 하나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홉 개 강의 전체를 다시 재게 했습니다. 이번에는 예순 몇 개 섹션 가운데 낭독이 설정 시간을 넘는 곳은 없었습니다. 전체로 보면 설정 430분에 낭독 155분, 비율로 36퍼센트였습니다. 1강에서 걸렸던 것과 같은 문제는 다른 강의에는 없었습니다.
걸린 건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걸어낸 것은 정확한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대사 양과 시간이 안 맞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큐시트를 오래 만져 본 사람에게는 원고 분량만 봐도 어느 정도 시간이 나올지 짐작이 갑니다. 그 감각이 '검증 통과'라는 말보다 먼저 걸렸습니다.
숫자를 낸 것은 AI였습니다. 그 숫자를 다시 재도록 이끈 건 대사를 읽다가 걸린 그 느낌이었습니다. 이 느낌이 없었다면 여덟 개 강의는 확인도 안 된 채 그대로 넘어갈 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