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2026-07-27

오늘부터 몇 편에 걸쳐, 책을 쓰며 지나온 자리를 순서대로 꺼내 보려 합니다. 이번 편에는 그 책을 왜 쓰게 됐는지, 그리고 처음 품었던 기대가 어디서 어긋났는지만 적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에 걸렸는지는 다음 편들에 남겨 둡니다.

왜 하필 책이었나

인테리어 실장으로 오래 일하는 동안, 반셀프 인테리어만큼은 일반인에게 권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현장을 아는 사람으로서 내린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다 업무에 AI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 판단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문가의 손이 있어야만 넘을 수 있다고 믿었던 자리를, AI와 함께라면 다르게 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든 자리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남겨 두고 싶어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한마디로 시작된 일

글솜씨가 있는 편이 아니어서, 책을 낸다는 것은 제 인생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쌓아 온 노하우는 나름 있었지만, 그것을 글로 옮겨 한 권으로 묶는 일은 다른 사람의 몫이라 여기며 지내왔습니다. 그런 제가 실제로 시작한 방식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대신, AI에게 목차부터 잡아 달라고 던진 말 한마디가 전부였습니다. 계획 세우는 일부터 막막했던 사람에게는, 그 한마디로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문턱 하나를 넘긴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문이 열리다 보니, 나머지도 AI가 다 알아서 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정작 채워야 했던 것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AI가 정리해 준 글은 가지런했지만, 현장에서만 나오는 감각과 판단은 그 안에 없었습니다. 결국 AI가 책을 대신 써 준 것이 아니라, 틀을 잡아 주는 동안 그 안을 채우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몫이었습니다. 한 번에 깨달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챕터를 넘길 때마다, 고쳐 쓸 때마다 거듭 확인하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가면서, AI에게 일을 맡기는 방식도 함께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필요한 항목만 몇 마디로 던져 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쪽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돌아오는 글의 폭도 처음부터 그 몇 마디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실제로 무엇을 보고 어떻게 판단했는지는, 몇 마디로는 애초에 전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순서를 뒤집어 보았습니다. 특정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겪었고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먼저 길게 풀어놓은 다음, 그것을 다듬는 일을 AI에게 넘기는 쪽으로 바꾼 것입니다.

건네는 이야기가 길고 자세해질수록, 다듬어져 돌아오는 글도 실제로 겪은 장면에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물론 그렇게 나온 글에도 제 손을 다시 대야 했습니다. 다만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가 이전보다 훨씬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짧게 시키고 통으로 받아 쓰던 버릇에서, 아는 것을 먼저 풀어서 건네는 쪽으로 일하는 법을 바꾼 것, 그것이 이 책을 쓰며 제가 새로 익힌 태도였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구체적으로 걸리고 다시 생각하게 된 일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다음 글부터 그 하나하나를 순서대로 꺼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