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됐다고 해도 다시 열어 봅니다

2026-07-29

AI와 일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다 됐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 말이 뜨면 일이 한 칸 넘어간 것 같아서 다음으로 손이 갑니다. 제가 쓴 인테리어 책을 전자책으로 묶는 동안, 저는 그 말 앞에서 몇 번 멈춰 서게 됐습니다. 처음 멈춰 선 날의 이야기부터 적습니다.

한글이 사라진 날

본문 글꼴을 조금 더 깔끔한 것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읽는 눈이 편했으면 해서, 제목도 같은 글꼴로 맞췄습니다. AI가 새 글꼴로 전자책 파일을 다시 만들었고, 결과를 살펴본 뒤 이상이 없다고 알려 왔습니다. AI가 확인에 쓴 도구에서도 한글은 멀쩡히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려다, 제 맥에서 미리보기로 파일을 열어 봤습니다.

한글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습니다. 영어와 숫자만 남고 본문이 비어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받고 온 파일이었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화면만 들여다봤습니다.

원인은 새로 넣은 글꼴의 파일 형식이 그 뷰어와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AI가 확인에 쓴 도구에서는 글자가 제대로 나왔고, 정작 제가 파일을 여는 프로그램에서는 빠졌습니다. 글꼴 형식을 다른 것으로 바꾸고, 미리보기로 열어 보는 것까지 확인 절차에 넣어 해결했습니다.

전자책은 제 손을 떠나면 각자의 기기에서 열립니다. 만드는 자리에서 멀쩡한 것과 열리는 자리에서 멀쩡한 것은 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됐다는 보고를 받고 나서

전자책 판형을 새로 바꾸는 작업을 할 때였습니다. 판이 작아지면서 예전 판형 기준으로 짜여 있던 값들이 곳곳에서 어긋났습니다. AI가 페이지를 훑어 문제가 있어 보이는 곳을 추려 살펴봤고, 두 가지를 찾아 고쳤다고 알려 왔습니다. 장이 시작되는 면 여러 곳에서 안내 목록이 다음 쪽으로 밀려나 있었고, 저자 소개도 한 면에 담기지 않고 뒤로 넘어가 있었습니다. 둘 다 예전 판형의 기준값이 그대로 남아 있던 탓이었습니다.

여기서 됐다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의심 가는 곳만 골라 보는 방식으로는 다 잡히지 않을 것 같아서, 처음부터 다시 자세히 봐 달라고 했고 결과가 아니라 화면 자체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AI는 그 자리에서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여백만 기준으로 삼으면 제목이 페이지 맨 아래 혼자 남거나 표와 박스가 페이지 경계에서 잘리는 경우를 놓친다고 했습니다. 그날 작업은 거기서 끊겼고, 다시 이어진 자리에서도 같은 말을 한 번 더 했습니다. 전자책만이 아니라 인쇄용 파일도 같은 방식으로 다시 봐 달라고 했습니다.

인쇄용에서 더 크게 벌어진 문제

인쇄용 파일을 열어 보니 전자책보다 더 심하게 어긋나 있었습니다. 장 간지 여러 곳이 다음 쪽으로 넘쳤고 저자 소개도 쪼개져 있었습니다. 준비가 다 끝난 줄 알았던 파일이 실은 손볼 곳투성이였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고치고 다시 만들었는데, 이번엔 쪽수가 눈에 띄게 줄어 있었습니다. 손댄 것에 비해 줄어든 폭이 컸습니다. 원인은 AI가 스스로 찾아냈습니다. 파일을 엉뚱한 위치에서 다시 만드는 바람에 삽화가 통째로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실수라고 인정하고 다시 만들었더니 쪽수가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일

다시 하나하나 훑어 달라고 했습니다. 제목이 페이지 맨 아래 혼자 남은 자리로 여러 곳이 걸렸는데, 들여다보니 본문이 아니라 목차와 장 간지에서 나온 오류였습니다. 장 간지에는 그 장에서 다룰 내용을 미리 보여 주는 목록이 있는데, 그 목록의 마지막 줄이 본문 제목과 같은 문구라 헷갈린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걸러내고 나니 진짜 문제로 남는 건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박스 하나가 정말로 페이지 경계에서 쪼개져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림과 설명이 떨어진 것처럼 보였는데, 열어서 직접 보니 그 그림은 사진이 아니라 도형으로 그려 넣은 것이라 애초에 걸러지지 못한 자리였습니다. 화면은 멀쩡했습니다.

걸린 것 가운데 진짜는 하나였고, 나머지는 방식의 한계가 만든 그림자였습니다. 그림자와 진짜를 가르는 길은 페이지를 하나씩 열어 눈으로 보는 것뿐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오간 것처럼 보이지만, 제가 한 말은 매번 같았습니다. 다시 봐 달라는 것, 결과 대신 화면을 보여 달라는 것. 되짚고 걸러내는 수고는 그 말을 들은 쪽이 했습니다.

그 뒤로 생긴 버릇

이제는 다 됐다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이 어디에서 확인된 것인지를 한 번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서 파일을 직접 열어 봅니다. 손이 한 번 더 가는 일입니다. 그날 열어 보지 않았다면 한참 뒤에야 알았을 일이라, 지금은 그냥 하는 편입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이런 대목이 몇 군데 더 있었습니다. 다음 편부터 하나씩 이어 가겠습니다.